생활재 이야기
백로와 추분
2013-09-09 11:00:29.0 suribi
완연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일교차가 커져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날씨가 계속됩니다. 일교차 때문에 하얗게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9월 7일)는 딱 이맘 때 절기입니다.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이때가 되면 하늘이 높아지고, 들녘의 벼는 노란색을 띠기 시작합니다. 고추는 점점 붉은 색이 선명해지며 사과, 포도 같은 햇과일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오곡백과가 익는 계절이기 때문에 이맘 때 과일은 단맛이 듬뿍 들어 있습니다. 백로에는 특히 ‘포도’가 한창입니다. 주렁주렁 열린 포도는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첫 포도를 따 사당에 먼저 올린 다음 그지 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추분(9월 23일)은 여름과 가을이 나뉘는 계절의 분기점입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다고 중용의 덕을 갖춘 계절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추분에는 들판이 날로 노란색을 더해 가며 벼들이 익고, 산에는 밤과 도토리, 상수리가 여무는 절기입니다. <농가월령가>에서는 이 절기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 백곡을 성실하고 만물을 재촉하니 / 들 구경 돌아보니 힘들인 일 공생한다 / 백곡이 이삭 패고 여물 들어 고개 숙여 / 서풍에 익은 빛은 황운이 일어난다.’
머리를 숙여 노랗게 익어가는 곡식은 농부의 피땀으로 일구어졌습니다. 밭두렁, 논두렁에 심은 콩도 익어가고 고추는 날로 붉어집니다. 때를 잘 맞춰 가을걷이를 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논밭을 살피며 곡식이 여무는지 보고, 때맞춰 거두어야 일 년 농사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목화를 따고 호박고지, 박고지, 깻잎, 고구마순도 이맘 때 거둡니다. 산채를 말려 묵나물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밤은 가을을 대표하는 과실입니다. 밤은 땅에 떨어져 썩어 새싹이 날 때도 여전히 두터운 껍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근본을 잊지 않는 덕이 있는 과일’로 여겨져 제사나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올랐고, 조상을 모시는 위패도 밤나무로 만들었습니다. 폐백을 드릴 때 대추와 밤을 시어머니가 양손에 가득 담아 며느리 치마에 던져 넣어 주는 풍습도 있습니다. 밤처럼 속이 가득차고 대추씨처럼 단단하게 잘 여문 아들을 낳으라는 축원의 의미입니다.